"이번 주 주번 누구지?"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시기도 전에 화난 목소리로 주번을 찾으셨다. 굳은 표정에 조금은 겁에 질려 떠는 듯한 아이 하나와 어른이 보기에는 되바라져 보일 수도 있지만 당차 보이는 얼굴의 아이 한명이 일어났다. "너희 둘! 쉬는 시간에 뭐했어? 주번이 말이야. 칠판 지우개도 안 털어놓고 똑바로 안 할래? 지금 가서 빨리 털어와." 아이 둘을 황급히 나와 칠판 지우개를 챙긴다. 한 아이가 분필 가루가 잔뜩 묻어있는 지우개를 조막만 한 손으로 여러 개 들 수 없어 겹쳐서 가슴으로 안듯이 들다가 떨어뜨리자 교실 바닥에 분필 가루가 흥건하다. 선생님은 하나씩만 가지고 가. 빨리 다녀와. 하신다. 주번 둘은 서둘어 지우개 털이가 있는 복도 맨 끝 구석으로 간다. 한 명은 나무 상자로 된 지우..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어린 시절 모았던 우표를 정리한 파일이 나오더군요. 그때는 형도 우표를 모았었고 친구들도 우표를 모으는 친구들이 많았었죠. 그래서 저도 꽤 욕심을 내던 취미 생활이었는데요. 사실 취미라는 것이 지금도 그렇지만 무 어떤 것이든 욕심을 내다보면 돈과 시간이 꽤 들어갑니다. ㅎㅎ 그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에 전지(한 번에 찍어내는 것을 뜯어서 자르지 않고 파는 것)는 사지 못하고 가능하면 시트(2장짜리 특별 기념우표) 나 명함판(전지에서 4장을 자른 것) , 낱장으로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중에서 시트는 단, 2장 가격이면서 기념우표 특유의 디자인이 있기 때문에 가장 인기가 좋았죠. 하지만 한정 수량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습니다.그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
오늘은 오로지 80년대에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를 다닌 사람으로서 학교 생활과 놀이 중심으로 그때를 추억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저희 반에도 선생 교단 바로 앞에서부터 아이들이 앉기 시작해서 7~8줄 정도 4 분단 정도 됐으니까 한 반에 56명~60명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 분단이라는 말이 참으로 오랜만에 생각이 났네요. ^^) 교실 뒷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서울의 학교는 그런 반이 보통 한 학년에 13~14반 정도 됐으니 한 학년에 600~700명 정도이고 6학년까지 있으니까 국민학교의 전교생은 대략 3,500명~4,000명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아이들이 너무 많다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같은..
1980년대 인기스타 하면 누가 뭐래도 단연 위대한 탄생. 영원한 오빠 조용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매년 올해 가수왕이 조용필이냐? 아니냐? 이런 얘기를 했었거든요.매번 조용필 씨가 당연히 가수왕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너무 자주 받아서 다른 사람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1982년에는 이용이 로 MBC 가수왕이 됐는데, 이것은 실로 이변 중에 이변이었습니다. 조용필의 히트곡은 너무나 많은데 한번은 이라는 노래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1986)그때는 어린 제가 듣기에는 너무 트로트 같게 느껴져서 별로라는 느낌이 들었었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보니 그 노래 또한 가사나 멜로디가 명곡으로 느껴지는 게 왜 조용필이 당대의 스타였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찾아보니 조용필은 MBC ..
# 즐겨 보던 어린이 방송 뽀뽀뽀~ 오늘은 1980년대 TV 프로그램에 대해서 기억을 떠올려 볼까 합니다. 1980년대에는 필자가 어린이였던 관계로 다른 연령대와 다소 추억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제가 80년대에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MBC 문화방송에서 하는 "뽀뽀뽀"를 즐겨봤습니다. 당대 청춘스타였던 만능 엔터테인먼트 왕영은 씨가 뽀미 언니로 진행하던 프로였는데 김병조, 이용식 그리고 또 이름이 생각 안나는 한분이 각각 뽀병이, 뽀식이, 뽀동이 역할로 출연했었죠.제 기억으로 뽀병이는 똘똘이 스머프, 뽀식이는 욕심이 스머프와 비슷한 캐릭터였던 것 같습니다.뽀미 언니는 백설공주 옷 비슷한 의상으로 나왔었죠."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로 시작되는 주제곡은 동요로도 참 유명하죠. 지금으로 치면 EBS..
일전에 글을 적었는데 중간에 임시저장을 한다고 했는데 저장이 안 돼서 안타깝게도 소실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비록 악필이지만 누구라도 가끔은 글이 술술 써진다 라고 느껴질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가 그랬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힘을 내서 다시 한번 적어 보겠습니다. '일구의 추억'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잊혀가는 기억력에 대한 아쉬움에 기록으로 적어 놓는 것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저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자신의 과거가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무튼 각론 하고 오늘은 80년대 먹거리, 반찬거리, 간식거리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5~6살 무렵 입이 짧았던 저는 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꽤 좋았지만 토속적인 음식, 특히 야채 같은 것을 잘 안 먹는 편이었습니다..
수익형 블로그에 개인적인 이야기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블로그 고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 블로그가 언제부터 수익형 블로그였던가요? 언제쯤 수익을 받아 볼 수 있을까요. ㅎㅎ 원래 블로그는 개인의 이야기가 주겠죠. 그래서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는 아쉬움에 개인적인 추억을 담은 이야기를 적어 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저와 동시대 분이라면 공감되리라 생각됩니다. '1900년대의 추억을 기록하며 '일구의 추억'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지금 제1화로 1982년도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1982년도 집 이사 풍경 필자가 지금까지 이사를 꽤 많이 다녔는데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전 이사의 기억이 1982년입니다. 그때 경기도 광명시 옆 서울시 구로구 독산동에서 경기도 구리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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