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칼럼]코로나 19 대처, 집단보호본능을 발휘하자.
- 일상/대중문화
- 2020. 8. 25.
점점 나를 조여 오는 코로나 19
연일 뉴스에는 코로나 19 감염자가 늘어나고 수시로 위기 경보 문자가 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출퇴근길에는 일명 턱스크(마스크를 턱에 걸치고)를 하고 전화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야외가 아닌 많은 사람이 있는 지하철에서 말이다.
가끔 뉴스를 보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 문제로 시비가 있었다는 뉴스를 보았기에 못마땅스럽지만 흘낏 쳐다보기도 조심스러웠다. 행여나 내 눈앞에서도 기사에서 보았던 그런 일이 벌어질까 우려스러운 생각 마저도 들었다. 그나마 출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나은 편이다. 집에 오는 퇴근길에는 거리 곳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술 취해서 큰소리로 침 튀기며 떠드는 취객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만약 그 사람이 확진자이고 지나가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해도 입증할 수 없다. 그리고 추적조차 불가능하다.
오늘은 이런 걱정이 더욱 피부에 와닿는다. 그 이유는 필자가 다니는 회사 근처 백화점 지하식당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필자 또한 그날 같은 시간대에 그 백화점 지하에 있었다. 같은 식당이 아닌 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동일한 시간대였기에 혹시라도 출입구 또는 계단, 복도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보고를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마침 회사에서도 조사를 하였고 보고를 하였는데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것 보니 보건당국 지침에 따른 격리 대상은 아닌가 보다.
한정된 공간의 상가가 아니어서 그렇지 만약 단일 가게였다면 나를 포함한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격리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심각한 문제나 위기를 대하는 자세가 타인이 겪는 것을 볼 때와 자신에게 직접 관계가 있을 때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렵게 말했는데 한마디로 자신에게 닥쳐 봐야 그 고통의 무서움을 안다는 말이다.
타인의 고통은 허허 웃으며 얘기하지만 지인의 일과 친인척의 일 그리고 나의 일은 천지 차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확진자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었던 경험은 이것이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코로나 감염이 그리 확율이 낮은 일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오늘 퇴근길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은 평소와는 아주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명사가 나와 강의를 TV 프로그램에 예방의학자 한 분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분의 강의에 많은 공감을 받았기에 생각이 난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방주사를 맞는 이유는?
나 자신을 보호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타인을 위한 이유도 있다.
건강한 사람은 예방접종을 안 맞고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병에 취약한 계층, 또한 알레르기나 어떠한 다른 이유로 예방접종을 못 맞는 특수한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필자도 아이가 있기 전에는 독감 예방접종 같은 것은 맞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독감주사를 맞으면서부터 같이 접종하게 되었다.
다수의 전문가 말에 의하면 독감 예방 접종이라는 것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도 주위에 맞더라도 걸리는 경우도 꽤 있다. 그리고 백신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예방 접속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부작용 때문에 타미플루 같은 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주위에서 종종 들은 봐 있었다.
하물며 독감도 그러한데 아직 치료법이 없는 코로나 19는 어떨까?
어떠한 사람은 운 좋게 쉽게 완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재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며 건강한 사람도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자는 마스크를 대충 쓰거나 안쓰는 사람들이 이른봐 집단보호본능을 발휘하였으면 좋겠다.
집단 보호본능은 원래 있는 말은 아니고 필자가 지은 말인데... (행여 누가 먼저 썼을지만 모르겠지만 필자가 알기로는 그렇다. ) 보호본능의 의미가 '상대로부터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보려는 본능' 을 일컫는 말인데 보통 보호본능은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보호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위험은 모두 나의 일 그리고 나의 부모 나의 자식의 일이라고 여기고 서로서로 다 함께 배려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하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코로나 19 전염성의 특징 아닌가.
지금 당신의 상태가 괜찮다고, 그리고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는 것이 조금 답답하다.라는 생각으로 안일한 태도를 보이지 말자.
당신의 부주의가 자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코로나 19 대처의 책임은 일부 의료인,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집단보호본능(集團保護本能)을 발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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